맹파명리에서 왜 전통의 용신이론을 버렸는가?
왜냐면 용신이라는 것이 불명확한 물건이고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용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쓰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신이라는 것을 따질 이유가 없다.
맹파체계는 체용과 빈주의 개념이외에 팔자에서 도데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를 해야하는 것이고 이것을 주공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만약 내가 물을 마실려고 하는데 내가 손으로 컵을 들어서 물을 마신다면 컵으로 물을 마셨으면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손이 용신인가? 컵이 용신인가?
손과 물은 상극의 두 개의 사물인데 손과 물을 정의함에 무엇이 용신인가? 무엇이 기신인가..
모두 부적합하다. 그러니 맹사가 간명할 경우에는 이런 식의 이해를 하기 때문에 용신과 기신의 개념은 논하질 않는다.
만약 용신, 기신의 개념을 버린다면 명리의 인식은 간단명료하게 된다.
손으로 컵을 들어서 물을 마시는 과정을 팔자에서 주공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 과정에 참가했던 것들은 모두 공신으로 부른다.
좀더 정확하게 보자면 손에 의해서 들려진 물은 바로 制神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아래는 종합적으로 맹파 체계중의 주공의 몇가지 유형을 설명한 것이다.
자운주 : 사실 맹파의 논리의 매력이 있는 부분입니다.
기존의 명리는 용신 기신 따위를 따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억부 격국에서 오는 일종의 중화를 지켜주는 것을 용신으로 정하고 정반대의 즉, 용신을 극하는 것을 기신으로 정해버리는 방법을 택합니다. 헌데 이 용신이 무언가에 의해 합당하고 극당하면 용신 역할을 못할 것이고 반대로 기신이 합극당하면 기신역할을 못할 것이고
또 용신을 찿았나싶어도 수많은 형충회합의 변화에 의해 변질이 될 뿐더러 격국을 바로 잡은 것인지 억부를 바로 잡은 것인지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맨날 이것이 용신인지 저것이 기신인지 헛갈리우스로 사주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수목화를 용신으로 쓴다.
화토금을 용신으로 쓴다...
이런 논리를 보면 쓴 웃음만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만을 골라내는 것도 부족한데...왜? 이 가장 중요한 것도 다양하게 변화하니까...세개를 두리뭉실 골라서 어쩌자는 것인지..
아예 5개 다 고르지.. 수목화 ㅋㅋ 오행 중에서 3개를 골라서 용신으로 써버리면 대부분이 용신이구먼... 기신은 달랑 팔자에 두개 토금이네. 그럼 팔자에 하나정도 없어주면 머 기신은 딸랑 하나 남는구먼...
그런데 왜 살아가는 것이 이리 힘드냐고? !
맹파의 저 논리를 가만 생각해보면 사주의 꼴을 파악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꼴값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팔자에서 어떤 꼴을 원하는가?
그 팔자에 있는 모양 그대로 글자 그대로 반드시 거치면서 살아간다는 것.
이런 식의 생각을 해보면 맹파의 이 부분에 대한 논리는 매력적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