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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운명이란 무엇인가?(1,2,3,4) : 운명속에 내재된 삶의 시나리오, 사주외

일통 2012. 2. 1. 09:06

운명이란 무엇인가?(1)-  운명속에 내재된 삶의 시나리오, 사주

   매년 새해가 되면 동양의 역이나 역술은 도마위에 오른다. 으레 연연세세 그러려니 하면서도 올해는 4부작으로 이어졌다 . 그리고 그 타이틀이 운명적인 역술을 나름대로 논리라는 메스로 해부를 하였다. 4부작을 청취한 청취자로서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4부작속에 담겨진 논리나 과학적인 합리 등의 단어가 자극이 되어 나름대로는  현대 과학의 바탕하에 역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하는  약간의 책임감과 같은  동기를 유발시켰다. 

  운명이 무엇인지가하는 거창한  주제를 논하기전에 바둑분야에서 이창호 9단의 열렬한 팬인 나는 작년에 이창호 9단의 사주를 보고 이 9단이 2011년 신묘년에 성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소위말하는 사주 용어로는 재극인(財克印)이라는 사건이 적용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사주용어에서 재라는 것은 재물을 뜻하거나 자기가 속하여 잇는 영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印)은 도장으로서 인정받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재극인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자기가 속하여 있는 영역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개념이다. 쉬운 예를 들면 그해가 재극인의 운에 들면 그 해에는 평소 실력은 우수하여 일등인데 시험을 보면 10등이나 20등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것이다.

  만약 직장에서 재극인의 운이 해당되는 기간이 되면 후배나 동료에게 실력으로  밀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래서 지방이나 한직으로 좌천을 당한다. 또한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재극인의 해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기간이며 고부갈등이 가시화되는 기간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재극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한도 끝도 없으므로 이정도로 줄인다. 만일 재극인이라는 기운이 10년 대운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운으로 들어오면 10년동안의 환경이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창호 구단은 2011년에는 우승과 같은 업적을 남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이 구단은 보다 나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게 될것이다. 골프의 신지애 선수 타이거 우즈 선수 그리고 박주영 선수모두 2011년 운이 좋지 않으며 그들은 2012년엔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것이다. 이창호 9단과 함께 이들의 실력발휘를 기대하여보기로 하자.

  각설하고  동아채널의 운명론에 관한 시리즈를 보고 느낀 감회의 일환으로서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보기로 하자. 운명을 논할 때 보통 사주팔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주팔자란 글자 그대로 여덟개의 글자를 말하는 것으로써, 사주팔자란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등과 같은 60갑자를 구성하는 요소중에서 여덟개의 글자가 두글자씩 네개의 기둥을 형성한다. 이러한 육십갑자에 담겨진 물리적인 의미는 매우 심오하기에 여기서 그 의미를 한번에 독자가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사정이 허락하면 천천히 이야기 하기로 하자. 그러나 우선 이야기 할수 있는 것는 임진이란 단어는 보통 흑룡이라고 이야기들 하나 임진이란 단어에서 나오는 첫번째 물리적인 의미는 임진년에는 하늘에 강풍과 찬 냉기가 돈다는 것이다. 임진년 운기에 영향을 받는 1,2월의 추위는 임수와 진토의 운기적인 기운에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개와 닭의 생육이나 산란율이 매우 좋아진다. 이는 2011년 신묘년에 하늘이 따듯하여 추위가 없었던 것과 대조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중장기 예보로서 미리한다는 것은 현대물리학의 패러다임에서는 통계적으로나 해석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우선  사주팔자란 임진년에 태어나면 연을 나타내는 글자가 임진이 되며 이어서 월과 일 그리고 시간에 각각 60갑자의 어느하나가 배당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견 복잡다단한 인생살이에서 여덟개의 글자를 가지고 그 사람의 행불행을 포함한 모든 운명적인 시나리오를 언급한다는 것은 일견 상식적으로는  크게 잘못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견 생각하여보면 사람의 복잡다단한 운명을 바로 여덟글자만을 가지고 풀어낸다는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이고 이는 허구나 사기에 가까운 이야기인듯 싶다. 요즈음과 같은 정교한 과학문명시대에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사주라든지 운명론적인 이야기들이 사서삼경의 하나인 역경에 기초를두고  몇천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우리의 문화나 인생사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한번쯤은  이를 단순히 사술이나 미신 또는 사람들의 약점을 노린 치부의 수단등이라는 해석대신에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인 고찰이 가능한지 여부를 고찰하여보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직간접적인 원인은 동양의 역경에 대한 역대 왕조를 거치면서 가진자들의 욕심과 서세동점의 시대에 근현대사의 세계 어느곳에서도 볼수없었던 동아시문화권에서 발생하엿던 세계사의 유례를 찾을수없었던  처절한 문화적인 단절에 기인함을 후에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언급하기전에 사주팔자는 운명론적으로 정하여진 운명 그 자체이기보다는 우리의 운명적인 삶속에 내재된  기본적인 각본이나 시나리오가 아닌가 한다. 그 시나리오에 담겨진 내용이 얼마나 어떻게 발현되는 지는 환경, 체질, 풍수,섭생 그리고 영적인 에너지 등 다양한 인자에 영향을 받을수 있으나 그 시나리오 자체를 새로운 버전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보인다.  아마도  공자님의 "七十而從心所欲不踰距"의 경지나 부처나 예수의 영적인 창조능력의 수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운명을 논하는 사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문이라기 보다는 운명을 이야기하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시나리오 같은것이다.그 정하여진 일종의 시나리오에서도 운명을 결정하는 환경이나 노력 그리고 풍수와 같은 인자에 따라서 금싸라기 참외가 될수도 있고  아에 발아도 하지 못한 참외가 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같은 사주라도 거리의 노숙자가 될수 있고 대학교수가 될 소지가 존재하는 것이다.(다음 2편에)

 

운명이란 무엇인가?(2) : 결정론적 운명론이란 단어가 가지는 어폐(?)

    사람들이 운명을 이야기할 때 제일먼저 제기하는 의문이나 질문중의 하나는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중의 하나는 인생의 전반적인 시니리오나 특성은 어느정도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근한 예가 영조임금의 일화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영조임금이 자기와 사주가 똑같은 사람을 수소문하여  궁궐로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은 산골에서 양봉을 하는 아낙이었 다고한다.

  한 사람은 만백성의 제왕이고 다른 사주의 사람은 단순한 시골의 아낙이었기 때문에 사주 팔자는 이 두사람간에 아무런 유기적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사주팔자에서 의미하는 운명이라는 개념을 잘못판단하고 있거나 너무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사주팔자에서 운명이 같다는 것은 100% 완벽하게 정하여진 삶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재된 속성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같은 참외씨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여도 그 두 사람의 운명은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현격한 차이를 보일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참외씨라고 하여도 좋은 토양이나 환경에서 뿌려진 참외씨는 금싸라기 참외로 결실을 맺을수 있지마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발아조차도 못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건이 좋거나 특수하다고 하여서 참외가 수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에 운명적인 단어의 절대성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태어난 연월일시가 같은 경우 그 두 사람에게 같은 것은 태어난 시간에 의하여 주어지는 내재된 속성이 같다는 것이다. 왜 그러면 연월일시가 같다면 그들이 가진 내재된 속성이 같을것이라는 가설이 성립하는 것인가? 하는 논리적인 또는 과학적인(?) 가설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서는 추후 논하기로 하자. 그러나 그들이 가진 재질이 같다고 하여도 부모나 환경 노력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장육부의 체질 등에의하여  제왕도 될수 있고 벌을 치는 양봉아낙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하여본다?

 아무튼지 양봉아낙이나 영조임금 그들이 가진 동일사주의 의미는 그들은 수많은 무리를 거느리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수많은 부하나 또는 추종자를 가진것을 우리는 사주용어로 재생관(財生官)이라고 한다. 인기인이나 정치가 중에서  재생관을 가진 사람은  그 운이 작용하는 기간동안에는  팬들이 많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그 기간을 벗어난 기간에는 아무리  실력이나 다른 외적인자가  출중하여도 팬이적다. 그러하기에 선거에 출마가하거나 인기인이 되기 위해서는 재생관이 필수적이다.

  하다못해 작은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재생관 여부를 보아서 결정하여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 내재된 운명적인 인자를 제대로 알필요가 잇는 것이다. 재생관이 안되었는데 사업을 하면 원금도 거두지 못하고 인테리어값만 낭비하고 사업을 접을 확률이 높다. 운명을 안다면 공자께서 말씀하신 순명편에 "만사분이정 부생공자망"을 현격하게 줄일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주팔자가 같다는 것은 향후 발현될 다양한 또는 수많은 인생의 씨앗(또는 속성)이 같다는 것 뿐이다. 그 씨앗이 어찌 발현할지는 주변 환경, 노력, 체질 등 다양한 인자에 좌우된다. 이것을 기억하고이해한다면 인생살이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유연하여질수도 있다.

  그러므로 약간 논리적인 추론을 허용하여준다면 같은 사주라도 교수가 될수도 거지가 될수도 있다. 마치 뛰어난 순수한 학문적인 재능을 가진 두 사람이 하바드 캠퍼스에 태어는 것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난것은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다. 사주 속성이나 재주가 순순한 학문적인 속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난 사람과 하바드 캠퍼스를 집안의 가문으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라는 ㅡ곳에 태어난 순수학문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거지가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크게 놀라지 않을수 있다. 문제는 작금의 세상은 매우 다양한 환경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같은 세기를 살고 잇다고 하여도 사람에 따라서는 19세기 봉건의 영역에 서 삻을 영위하는 사람이 잇는가하면 초현대적인 영성의 세계나 디지털의 세계를 주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하기에 같은 사주라 하더라도 그들은 같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주의 특징이 무엇인가와 그 사람의 지역,환경,체질, 노력 등은 매우 큰 인생의 차이를 보일것이라는 것이 같은 사주라도 같은 인생을 보장할수 없는 이유이다. 이런경우 제기되는대표적인 질문중의 하나가 일란성 쌍동이의 운명의 차이이다. 일란성 쌍동이의 운명의 차이는 DNA와 같은 유전인자가 복제 분열을 할 때  회전방향의 우선인가 아니면 좌선인가하는 방향 차이로서 이는 대운의 흐름이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을 나타낸다.

  그래서 쌍동이 형제의 운은 한사람이 좋으면 다른 사람으 나쁜 대운으로 흐르거나 전공이나 운의 방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심지어는 일란성 쌍동이의 앞으로 올 대운의 기운에 따라서 그들의 체격마저도 결정되는 충격적인 사실도 경험하곤 한다. 한마디로 향후 다가올 운명적인 기운에 적응하기 적합한 체질이나 체격으로 성장한다는 것으로서 마치 공기와 물의 경계층을 통과하는 빛이 최단거리를 버리고 최단시간이 되는 경로를 미리 알고 선택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지 운명에 대한 결정론적인 운명론은 운명에 대한 자의적인 확대해석의 느낌이 강하다. 사주팔자라는 시나리오에 대하여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 지역적인 환경, 풍수 인자, 먹는 음식, 교육이나 종교적인 영성 등이 강력하게 그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하여서 사주자체가 가지는 버젼의 근본적인 변화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사람이 가진 운명론에 대한  가정이다~(다음에)

운명이란 무엇인가?(3)- 운명적인 삶의 나비효과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나비효과는 기상학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이작은 나비 몸짓의 효과가 증폭될 경우 캘리포니아에서 폭풍이 몰아칠수도 잇다는 말이다. 이러한 나비효과는 보통 작은 인자들의 중첩된 증폭현상이 큰 변화를 이루어 낼수 있다는 말로서 종종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나비효과는 항상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나비효과가 발생하기위해서는 기상상태가 매우 불안정하여야 하며 섭동(peturbation)에 의한 증폭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 비근한 다른 예를 들면 매우 불안정한 물질 합성 반응장치에서 초기의 농도오차를 0.00000001 즉 10의 -8 승배분의 1로 하는 경우와 0.00000000000000001 즉 10의 -16승분의 1하는 경우에 두 반응의 결과가 현격하게 다른 물질로 다르게 나타날수도 있음을 이분야의 전문가들은 간혹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살이도 유사하다.우리의 매일 매일의 작은 운명변수들이 중첩될 경우 10년 또는  몇십년의 세월이 흐른뒤에 그 작은 효과들의 중첩은 마치 기상학에서의 나비효과처럼 큰 폭풍우로 발전 할수도 있고 반대로 찻잔속의 태풍처럼 미미할수도 있는 것이다.그러나 사주팔자 이론을 가지고 운명을 논하는 입장에서는 나비효과는 주어진 인생의 시니리오를 크게 이탈하여서는 거의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아무리 나비효과라하더라도 뛰어난 운동선수가 뛰어난 발명가가 되는 매우 현격한 속성상의 차이를 크게 벗어나 나비효과를 나타낼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만일 동일 사주가 하나는 교수이고 하나는 역전에서 무위도식하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다  주변애서 주는 기운이나 혜택이 많은 관인상생이나 재생관의 특징을 가진 사주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두 사람다 인생에서 주변에서 주는 것이 많아 무엇을 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크지 않은 사주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교수가 된 사주는 초년 집안이나 환경에서  동기를 유발할 조건이 제도적으로 갖추었거나 제공되엇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며 다른 사람은 이러한 것에 대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가중 중요한 20-30대 세월을 낭비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나비효과는 사주팔자라는 주어진 인생의 시니리오의 경로에서의 지속적인 변동이지  나비 애벌레가 흰 독수리의 속성을 가진 인자로의 컨텀점프(양자점프,quantum jump)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생에서는 사주팔자 또는 DNA에서 주어진 속성의 일들만을 하고 가는 것이기에 단지 소박한 생활인으로서의 부를 가진 사람이 재벌의 운에서 가지는 거대한 부의 축재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속성의 관성이나 무게가 가지는 힘이 강력하기에 우리 의지의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된다고 하여도 인생에서 천성이나 타고난 강력한 적성을 벗어난 양자점프와 같은 인생반전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약간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수 잇으나 풀빵장사가 풀빵장사를 하다고 도(道)를 얻어 그가 모든 물질적인 재화를 소유할 능력을 지닌다고 하여도 그는 역시 풀빵장사를 한다고 한다. 이것이 같은 시니리오를 유지하면서 다른 차원의 인생반전을 이룩할수 잇는 이야기를 시사하고 있는지도모른다.

  아무튼지 사주팔자는 우리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인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사주팔자가 인생을 결정적으로 기술하는 모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사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공학설계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매우 중요한 법칙이기는 하지마는 이것외에도 중요한 설계 법칙들이 존재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운명이란 단어를 자의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그 단어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확대해석하거나 오용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다음에)

 

운명이란 무엇인가?(4)- 운명이란 이름으로 내재된 속성읽기

   보통 물고기나 철새들은 귀소본능과 같은 한두가지의 확실한 속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에 반하여 우리 인간은 보다 많은 다양한 속성들을 가진다.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개인간에 큰 차이로 나타난다 이러한 속성의 차이가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운명을 결정하는 하나의 변수가 된다.  운명이란 단어가 운명일수밖에 없는 것은 본인이 그를  원하지않앗음에도 불가피하게 그일을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을 종종  이야기한다.그러나 대개 그러한 사람들은 운명에 대하여 치열하게 성실한 자세를 보이지 않은 경우에 나타나는 피해자의 변명적인 상황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지 인생사에서는 운명이란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를 동반한 경우이거나 적어도 부정적인 의지기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서 운명이란 내재된 강력한 관성적인 힘인 경우라는 것이다. 공자님의 주유천하나 예수님의 살신성인 그리고 부처님의 가름침의 헌신은 적어도  그들이 원한다면 피할수 있었던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그러한 인생을 선택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분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왜 그 들이 가진 또는 그들의 사주기운에 내재된 운명적인 인자의 호불호를 막론하고 그러한 인생행로를 택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삶이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국화나 코스모스에게 서리가 내린 추운 오상계절이 아닌  따듯한 시절에 개화할 챤스를 준다면 그들은 그것을 원할까?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 사주기운에 내재된 최대의 기운을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주용어로는 격국이라고 한다.

   격국은 일간과 월지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엔진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서 격국대로 살지 않은 인생은 호의호식하는 삶을 가진다고 하여도 항상 두고온 고향이나  못다한 인생에 대한 아쉬움을 보인다. 이러한 격국 거기에는 정관격이 있고 편관격 등 10개의 격이 존재한다. 만일 여기서 정관격이라는 것은 가장 정비가 잘된 시스템과 같은 에너지를 가진것이고 편관격이라는 임금의 권도나 태풍과 같은 강렬한 힘아나 험한 기운의 발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주팔자에서 정관의 격을 가진 사람과 편관의 격을 가진 사람은 사고방식이나 인생에서의 전개되는 양상이 전혀다르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축구 경기에서 정관격의 선수가 골을 넣는다면 정확한 어시스트를 받아서 손쉽게 골문에 골을 밀어넣는 것이라면 편관격의 선수의 골은 치열한 골 다툼의 현장에서 오브헤드킥으로 극도의 어려운 상황에서 골을 넣는 것이다. 그날 일진이 정관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 골프를 친다면 그 사람의 공은 페어웨이와 경사가 적은 그린에 안착할것이나 편관의 기운의 영향을 그 날받는다면 그의 공은 벙커턱이나 가장 어려운 라이를 선택할것이다.ㅎㅎ 이것은 우리는 보통 하는 말로 운칠기삼이라고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장에서 적어도 어느세월동안 생존경쟁의 장에서 치열한 무공의 실력을 겨루어 본 사람이라면 운칠기삼 그말의 의미하는 바를 알것이다. 만일 그말의 의미를 모르고 승승장구하였다면 그는 너무나 불행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세상의 지혜를 배우는 겸손이라는 덕목을 조만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운명이란 단어와 결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운명이라는 이름속에 내재된 우리들의 속성에 관한 과학적인 토론이 이루어진바 없다는 것이다. 즉  운명은 운명이 아니며 차라리 내재된 인과율과 같은 관성이라는 것이다 비근하고 간단한 예중의 하나가 고 김영석 대장의 험난한 산행길의 원동력이무엇인가?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김영석 대장이 왜 가장 험한 계절에 가장 험한 코스를 선택하여 등반하고자 했는지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김영석 대장의 그 불굴의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고 김영석 대장의 사주팔자의 기운을 보면 본인의 기운이 매우 강력함을 알수 있다. 이렇게 강력한 기운을 가진 사람은 그 강력한 기운을 아용하여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그 기운으로 물건을 만들던지, ceo를 하던지, 아니면 나라에 봉사하던지 등이다. 그러나 고 김영석 대장에게는 사주팔자 기운에 본인의 강력한 기운을 소진할 강력한 임무나 장(장,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김영석 대장은 본인의 기운에 필적하는 강력한 임무나 험한 도전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김영석 대장이 왜 그렇게 험한 고산준령을 그의 인생에 타겟으로 삼았는지에 대한 사주팔자에 기초한 운명론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의 하나는 그러한 김대장의 불굴의 기운이 2011년 신묘년 한해는 편인도식에 의하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2011년 한 해는 김 대장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것이 공자님의 명과 군자를 연계시킨 "명을 모르면 군자가 아니다라" 는말씀까지는 아니더라고 적어도 수신제가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자기앞에 닥쳐진 피흉추길의 기운을 읽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귿이 운명론을 과학적으로 배워야 하는 이유라면 이유일것이다. 그러나 만일 본인이 죽는날까지 본인과 가족의 운이 강력한 사람이라면 굳이 운명론에 발을 디딜 이유는 없어 보인다. 

 지구촌에 사는 70억에 가까운 모든 인간들은 그들 모두 각각 그러한 운명론적인 강력한 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격국과오행의 분포에 따라서 누구는 지구밖으로 행군하고 싶고 누구는 저 해지는 남극의 빙원을 향하여 전진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또 다른이는 저 작은 미세세포속의 세계에서 우주를 보고자 하며 다른이는 빙판위에서 지고지순한 우아한 동작하나로 우리를 전율케하여 삶의 존재 이유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운명적인 속성을 사주라는 이론에서 우리가 잡아낼 수 있다면 사주이론은 그것만으로 이미 그 몫을 다하고 있는지도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금의 고비용저효율의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에 적성이나 미래에 불안하여하며 소모적인 에너지와 재화를 낭비하는 일을 줄일수도 잇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다음에)

출처 : 관상자미두수지평학회
글쓴이 : 무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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