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론(風水論) 1
어버이를 장사(葬事)지내는 사람들은 지사(地師)를 맞아다가 길지(吉地)를 가려 묘자리를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자(丁子 정약용이 자신을 가리킨 말)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예(禮)에 맞는 처사가 아니다. 어버이를 매장하면서 복(福)을 바라는 것은 효자의 마음이 아니다."
이런 반론(反論)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이치가 있기에 그런 예(禮)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반론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절대로 그럴 만한 이치가 없다. 주공(周公)이 족장법(族葬法)을 만들 적에 소목(昭穆)의 순서로 장사지내게 하고 영역(塋域)을 지정하여 주었으나, 산(山)의 맥(脈)을 뚫으면 기(氣)가 흩어진다는 금기(禁忌)는 없었다. 북방(北方)에 장사지내면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였을 뿐, 특별히 방위(方位)나 좌향(坐向)을 달리 지정하여 주지는 않았다. 그랬어도 이때에는 경(卿)은 대대로 경(卿)이 되었고 대부(大夫)는 세록(世祿)을 받았으며, 자손의 번성과 영달도 전과 같았다. 기주(冀州)나 연주(兗州)의 들판은 끝없이 넓어 언덕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지금도 장사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묘 주위에 담을 둘러쌓아 경계를 만들고 주례(周禮)에 의거 소목을 바루기만 할 뿐이다. 용호(龍虎)나 사각(砂角)의 경관(景觀)은 없어도 이들의 부귀는 전과 같으니, 길지(吉地)를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영웅호걸은 총명과 위엄과 재능이 일세(一世)를 통솔하고 만민(萬民)을 부리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살아서 명당(明堂 조정(朝廷의 뜻) 위에 앉아 있을 때에도 오히려 자기 자손을 비호할 수가 없어서, 자손들이 요절(夭折)하는 경우도 있고 폐질(廢疾 불치병(不治病))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말라 비틀어진 무덤 속의 뼈가 아무리 산하(山河)의 좋은 형세를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기의 후손(後孫)을 잘 되게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미신을 믿는 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썩은 뼈를 묻어놓고 사람을 저주(詛呪)하여 보면 또한 증험할 수 있다. 이 이치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는 것이다."
아, 이것이 어찌 차마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의견은 이러하다.
"세상에 썩은 뼈를 묻어놓고 저주함으로써 사람에게 앙화를 끼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썩은 뼈를 묻어서 사람에게 복을 받게 할 수 있겠는가. 간사하고 요망한 무당이 이 술법으로 사람을 속여서 악의 구덩이로 빠뜨리고야 마는데, 이 술법으로 복을 맞아들인 사람이 있는가. 비록 여기에 이치가 있다고 해도 군자(君子)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 법이거든, 하물며 절대로 이치가 없는 데야 말해 뭐하겠는가."
풍수론 2
지금 어떤 사람이 길에서 떨어뜨린 보따리를 주워 풀어보니 은(銀) 1정(錠)이 들어 있었다고 하자. 이 화폐의 가치는 베 1필을 살 수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사방을 휘돌아보면서 품속에 숨겨 가지고 남이 뺏으러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빨리 달려간다. 이것은 인정(人情)이다.
이른바 길지(吉地)라고 하는 것은, 위로는 부모의 시체와 혼백을 편안하게 하고 아래로는 자손들이 복록(福祿)을 받아 후손을 번창하게 하고 재물이 풍족하게 함은 물론, 혹 수십 세대토록 그 음덕(陰德)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천하에 더없이 큰 보배이다. 따라서 천만 금의 보옥(寶玉)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지사(地師)가 이미 이런 큰 보배 덩어리를 얻었다면, 어째서 자기의 부모를 그곳에다 몰래 장사지내지 않고 도리어 빨리 경상(卿相)의 집으로 달려가서 이를 바친단 말인가. 어째서 자기에게 청렴(淸廉)하기는 오릉중자(於陵仲子)보다 더하고 경상들에게 충성(忠誠)하기는 개자추(介子推)보다 더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내가 깊이 믿을 수 없는 점이다.
어떤 지사가 손바닥을 치면서 자기가 잡아준 길지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산줄기의 기복은 용과 호랑이가 일어나 덮치는 듯한 형세이고 감싼 산줄기는 난새와 봉황이 춤추는 모습이다. 인시(寅時)에 장사지내면 묘시(卯時)에 발복(發福)하여 아들은 경상(卿相)이 되고 손자는 후백(侯伯)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야말로 천리(千里)에 한 자리 있을까말까한 길지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그렇게 좋은 자리이면, 어째서 너의 어미를 장사지내지 않고 남에게 주었느냐?"
[주D-001]오릉중자(於陵仲子) :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청렴한 선비인 진중자(陳仲子)를 말한다. 철저히 자급자족을 주장한 사람이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2]개자추(介子推) : 춘추 시대 진 문공(晉文公)의 충신으로 진 문공이 망명(亡命)하여 있을 때 줄곧 시종(侍從)하였었다.
풍수론 3
이른바 풍수서(風水書)란 것을 보니, 가성(佳城 무덤)과 길지(吉地)를 그림으로 그려 놓고 방위는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 또는 건(乾)ㆍ곤(坤)ㆍ간(艮)ㆍ손(巽)이라 분별하여 놓았다. 그리고 입수박환(入首剝換)이니 용호사각(龍虎砂角)이니 득수파수(得水破水)니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모두가 이 방위에 상충(相衝)되느냐 상합(相合)되느냐에 따라 재앙(災殃)과 상서(祥瑞)를 구분해 놓고 있었다. 때문에 지사가 남의 집 족보(族譜)에 그려져 있는 선조(先祖)의 묘지(墓地)를 보고는 단번에 길흉(吉凶)을 판단해 낸다. 아, 이야말로 꿈속에서 꿈꾸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연극이다.
사람치고 두정골(頭頂骨)은 둥글고 눈썹은 나란히 붙어 있고 눈은 둘이고 코는 얼굴 중앙에 있고 광대뼈는 좌우에 있어 입을 협보(夾輔)하고 있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장수(長壽)한 이도 있고 단명(短命)한 이도 있고 귀한 이도 있고 천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다. 따라서 어떻게 면목(面目)의 방위(方位)가 규격에 맞아 어긋남이 없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길흉을 판단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골격(骨格)과 풍신(風神)에 대해서는 말이나 글로는 실물과 똑같게 묘사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건대, 저들이 자ㆍ오ㆍ묘ㆍ유니 또는 건ㆍ곤ㆍ간ㆍ손이니 하는 것으로 구차스럽게 의기(宜忌)를 살피는 것은 이야말로 기문(奇門)과 육임(六壬)에 의거해서 귀신과 만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주D-001]입수박환(入首剝換) : 묘자리를 이루는 맥(脉)의 바로 위를 뇌(腦)라 하고 뇌의 바로 위를 입수라 하는데 입수를 이루기 위해 꺾여져 이루어진 맥(脉)을 말한다.
[주D-002]득수파수(得水破水) : 묘자리의 외부적 환경을 말한다. 즉 청룡과 백호의 외부, 또는 좌판(坐版)의 주령(主嶺) 밑에서 묘자리의 맨 앞을 흘러가는 물을 말하는데, 물이 흘러오는 방향을 득수(得水)라 하고 빠지는 곳을 파수(破水)라 한다.
풍수론4
어린애가 갑자기 종기를 앓아 피부가 벌레가 갉아먹은 나무처럼 되었다. 이를 본 지사(地師)가,
"묘(墓)의 건술방(乾戌方)이 바람을 받아 광중에 있는 시체(屍體)에 벌레가 생긴 것이 빌미가 되었다."
한다. 무덤을 파고서 살펴보면 과연 사실이다. 이러니 할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큰아들이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어린애가 손발이 뒤틀리는 병에 걸렸다. 이를 본 지사는,
"묘 속의 시체가 뒤집히는 금기를 범한 탓으로 시체의 등이 위로 젖혀진 것이 빌미가 되었다."
한다. 무덤을 파고서 살펴보면 과연 사실이다. 이러니 할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떤 재앙이 닥쳤을 때 이것이 묘가 불에 탄 탓이라고도 하고 관(棺)이 물에 떠 있는 탓이라고도 하고 유골(遺骨)에 나무뿌리가 얽힌 탓이라고도 하는데, 증험하여 보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이러니 할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끝내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게 되는 원인인 것이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어 20여 가지의 마술을 기록하여 놓았다. 이 이치를 안다면 지사의 말이 망령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귀물(鬼物)이 사람을 농락하는 것은, 혹 우연히 그렇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인데 이를 묘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생긴 것이라고 하고, 혹 실지로 그럴 만한 원인이 있어 그렇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인데 이를 묘의 일에 연관시켜 묘하게 갖다 맞춘다. 또 애당초 이런 재앙이 없는 것인데 마술로 만들어서 사람의 시각(視覺)을 속이기도 하는 것으로, 바라볼 때는 분명히 틀림없지만 실제로 그 물건은 허망한 것이다.
나도 신(神)들린 사람을 보았었는데 안보고도 귀신같이 알아맞혀 백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겨울철에 청행(靑杏)과 벽 속의 납서(蠟書)를 척척 알아맞히고,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 그 사람 아버지의 분묘 앞에 기이한 돌이 있는 것을 알아맞힌다. 또 병든 사람을 위해 푸닥거리하면서,
"이 병은 묻힌 뼈가 빌미가 된 것이다."
고 점쳐 낸다. 그리하여 방구들 속에서 쥐의 뼈를 파내고 부엌문 아래에서 해골을 파낸 것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모두가 요괴로운 마술로 한때 눈을 속인 것인데, 어찌 여기에 미혹될 수 있겠는가.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저리자(樗里子) 같은 지혜와 미생고(微生高) 같은 정직을 지녔다 해도 끝내 사귀(邪鬼)의 계략에 속아 그 술책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풍수론5
곽박(郭璞)은 죄없이 참형(斬刑)을 당한 뒤 시체는 물 속에 던져졌으며, 도선(道詵)과 무학(無學) 등은 모두 중이 되어 자신의 종사(宗祀)를 끊었으며, 이의신(李義信)과 담종(湛宗)은 일점의 혈육도 없다. 지금도 이런 자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일생토록 빌어먹고 사는가 하면 자손들도 번창하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이치인가. 지사(地師)의 아들이나 손자로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나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된 사람을 몇 명이나 볼 수 있는가.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다. 내 땅에 발복(發福)될 수 있는 묘지가 있는 것을 알았는데, 이를 한 꿰미의 돈 때문에 눈이 어두워 남에게 선뜻 내어줄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재상(宰相)으로서 풍수술(風水術)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치고 자손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사서인(士庶人)으로서 풍수술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치고 괴이한 재앙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마 온공(司馬溫公 온(溫)은 사마광(司馬光)의 봉호)은 지사에게 뇌물(賂物)을 주어 자기의 뜻에 따르게 하였으나 형과 아우들이 영화를 누리면서 오래 살았었다. 이런데도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가. 사물의 이치에 널리 통달했다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풍수의 이치는 꼭 있다고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꼭 없다고도 할 수가 없다."
아, 쟁론(爭論)을 이런 식으로 판결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선비가 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