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학은 서자평의 학설을 기준으로 古法과 新法으로 구분한다.
고법사주학은 일명 삼명학(三命學)이라고 한다.
三命이란 祿,命,身을 말하는데, 출생 年柱의 天干을 祿, 地支를 命, 年柱의 納音五行을 身이라고 한다.
본 논문에서는 곽박이 사주학의 창시자임을 밝혔는데, 곽박의 저술 <옥조신응진경>이외에도 귀곡자가 저술하고 이허중이 주석을 달았다고 전해지는 <이허중명서>와 낙록자가 저술하고 왕정광, 이동, 석담영 세 사람이 주석했다고 전해지는 <낙록자소식부주>가 존재하는데 <이허중명서>와 <낙록자부주>의 원문을 언제 누가 저술했는지는 고증하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책들을 주석한 이허중, 서자평, 석담영 등보다 훨씬 이전에 곽박이 생존했으며 그가 <옥조신응진경>을 저술했고, 그 책에 四柱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허중명서>와 <낙록자부주>는 곽박의 <옥조신응진경>이후에 저술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설사 그 이전에 저술되었다고 할지라도 누가 언제 저술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생몰 연도가 확실한 곽박을 사주학의 창시자라고 함이 옳다. 본 논문에서는 서자평이 등장하기 전의 인물들이 저술하거나 주석을 달았다고 전해지는 책들을 古法으로 분류하여 그 내용을 고찰하기로 한다.
가) 周의 鬼谷子가 저술하고 唐의 李虛中이 주석한<李虛中命書>
귀곡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이며, 그의 제자로는 손빈, 방연, 소진, 장의 등이 있다. 손빈과 방연의 마릉 전투가 기원전 341년에 일어났고, 소진의 합종책이 기원전 333년에 채택되고, 장의의 연횡 책이 기원전 311년에 채택이 되었는데, 귀곡자의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무렵에 생존했던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가 <귀곡자유문(鬼谷子遺文)>이라는 글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唐나라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使)벼슬을 했던 이허중이 <귀곡자 유문>에 주석을 달아 <李虛中命書>라는 제목으로 편찬하여 후세에 전해졌고, 그 <이허중명서>는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허중의 字는 常容이며, 魏나라에서 侍中벼슬을 했던 李沖의 8대손이다. 唐 헌종 元和년간1) 에 진사 급제하여 전중시어사 벼슬을 지냈다.
한유(韓兪)가 이허중의 묘지명을 작성했다는 기록이<창려문집(昌黎文集)>에 보인다.
<창려문집>에 기록된 묘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허중은) 五行書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를 하였고, 사람의 출생 연월일이 놓여진 바 日辰을 가지고 干支의 相生, 勝衰, 死王을 짐작하여 사람의 壽夭, 貴賤, 利不利를 추리하였다.2)”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하여 묘지명에 年月日만 있고 時가 없다고 하여 이허중이 時를 보지 않고 무시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四庫全書의 편찬자들도 그와 같은 오해를 했었지만, 사실 이허중명서를 읽어 보면 이허중이 時를 무시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화민국의 명리학자 徐樂吾3)가 그의 저서 <子平粹言>4)에서 정확하게 밝힌 바5)가 있다.
<이허중명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로는 대만의 양상윤(梁湘潤)이 저술한 <李虛中命書>6)가 있다. 이 책에는 고법 사주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서술되어 있다.
나) 珞琭子가 저술하고 세 사람이 주석한 <낙족자부주(珞琭子賦註)>
낙록자는 <소식부(消息賦)>를 저술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전국시대의 인물이라는 설에서 宋나라 때의 인물이라는 설에 이르기까지 학설이 구구하다.
하지만 宋代의 인물들 왕정광(王廷光), 석담영, 이동, 사자평등의 사주 연구가들이 그에 대해 주석을 달았고, <소식부>에는 고법 사주학의 이론이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저술이다.
서자평이 그것에 대하여 주석을 달기도 하였고, 明代의 저명한 명리연구가 만민영이 <삼명통회>에서 그것에 대해 주석을 달기도 하였다. 하지만 <소식부>자체는 고법 사주학의 이론이며, 서자평이 새로운 子平學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한 것일 뿐이다.
宋代의 인물들인 李仝(1059년), 王廷光(1123년), 釋曇塋(1127년)7)의 세 사람이 주석을 단 책이 <珞琭子賦註>인데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祿馬와 向背의 이론, 대운을 산출하는 원리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원리는 현대 자평학에서 그대로 채용하고 있을 정도로 자평학에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낙록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소식부>에 주석을 달았던 석담영 조차 낙록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며 옛날의 隱士였다고 짐작될 뿐이라고 기록8)하고 있을 정도이므로 낙록자의 생몰 년대를 밝히기는 쉽지가 않다.
대만의 양상윤은 <소식부>가 저술된 시기가 東漢에서 唐初라고 보는 입장9)이다. <낙록자부>를 서자평이 일간 위주의 자평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주석을 단 것이 <珞琭子三命消息賦註>인데,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낙록자삼명소식부주>는 서자평의 저술<明通賦>와 함께 신법 사주학 이론의 초석이 된다.
다) 郭璞이 저술하고 徐子平이 주석한<옥조신응진경(玉照神應眞經)>
곽박은 서기 276-324년 東晋時代에 생존했던 인물이고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지닌 기재였다고 평가된다. 그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옥조신응진경>은 四柱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저술이고, 日干 위주의 사주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서자평이 주석을 달았으며, <고금도서집성>에 수록되어 있다.
<옥조신응진경>은 진정한 의미의 사주학이라고 할 수 있는 子平學의 창시자 서자평이 곽박의 저술이라고 인정하여 직접 주석을 단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체계적인 최초의 사주학 이론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출생 연월일시를 四柱의 干支로 표기하고 四柱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사람의 운명을 체계적으로 논하는 이론은 곽박의
<옥조신응진경>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서자평이 주석한 곽박의 저서 옥조신응진경이라는 책이 사고전서이전에 완성된 영락대전과 고금도서집성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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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서기 806년-820년
2) 愈墓誌中所云.最深五行書.以人之始生年月日所値日辰.干支相生勝衰死王相斟酌.推人壽夭貴賤利不利. <李虛中命書提要>1쪽. (<叢書集選>171권,대만 1987년) 참조.
3) 서락오 (1886년 음력 4월 6일 출생. 1948년 63세에 상해에서 심장병으로 사망.) 民國 초년의 대표적 명리연구가. 원수산과 함께 쌍벽을 이루면서 명리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그 당시 인쇄술의 급격한 발달에 힘입어 다량의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함으로써 명리학의 이론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저술로는 <자평진전 평주>, <적천수징의>, <적천수보주>, <궁통보감평주>, <조화원약평주> 등의 명리학 3대 고전을 평한 책 5권과, 고금의유명인물의 사주를 해설한 <고금명인명감>, 명리학의 연원을 밝힌 <命理尋原>, 명리학 입문서 <명리입문>, 대표적 저서 <자평수언>등이 있다.
4) 서락오의 대표 저서. 用神定法 5원칙의 理論이 수록되어 있다.
5) <子平粹言> (대만 무릉출판사, 1987년) 115쪽 참조
6) <李虛中命書> (대만 武陵출판사, 1985년) 참조.
7) ( )안의 년대는 각각 주석을 한 년도를 표시한다.
8) <낙녹자부주> 卷上1쪽. (1987년 대만 新文豊출판사 발행) 참조.
9) 양상윤, <子平賦集註> (대만 무릉출판사, 1985년 발행), 117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