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載與神功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2. 00:03:07
이 글은 입문논문 육산님의 덧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굉장한 사이트라는 생각입니다.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궁금한 거 하나 여쭙니다. 적천수(경도가 편집한 것으로 생각)에서 帝載 라는 글자를 썼는데, 왜 이게 황제(헌원)를 의미한다고 단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문헌상의 근거가 있는지요? 제 생각에는 帝와 神은 대구로서 帝가 神보다 앞에 나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는 천지인 만물을 주관하는 상제를 말하고 신은 신명체(정기신에서의 신이 아님)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제목: re: 帝載與神功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2. 00:07:17
안녕하십니까.육산님!
먼저 적천수가 나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봅니다.
흔히들 적천수는 유백온의 저서라는 말이 있는데, 유백온 저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백온은 명나라를 건립한 국사로서 많은 분야의 책들이 전해오는데 적천수와 같이 함축하여 쓰는 문장이 아니라 일반 문체입니다. 따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경도로 보고 시기는 송나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帝載與神功은 첫 화두로서 얼마든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帝載
경도는 적천수에서,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라고 4주의 근원을 첫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동양학에서 첫 화두보다 중요한 문장은 없습니다. 위 문장은 적천수를 시작하는 첫 화두로서 적천수를 펼쳐 나갈 向을 담고 있습니다. 동양학 고전의 첫 문장은 절대로 평이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제목만큼이나 전체를 함축하는 의미있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즉 제목과 첫 문장만 잘 이해하면 그 책은 반 이상 이해하는 것입니다.
1. 帝載에 대하여...
帝를 풀 수 있는 열쇠는 載(실을재,운반할재)에 있다고 봅니다. 載는 실려 있는 내용을 중시하는 말로 보통 아래와 같은 문장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履載中
기백은 `황제내경 음양이합론`에서, "天履地載 萬物方生 未出地者 命曰陰處 名曰陰中之陰 則出地者 命曰陰中之陽"(하늘은 덮고 땅은 실으니 만물이 바야흐로 생겨납니다. 아직 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이름하여 음처라고 하고 陰中之陰라고 이름하니, 곧 땅에서 나온 것을 이름하여 陰中之陽이라고 이름합니다)라고 履載中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載水
이순지는 `천문류초`에서, "天大地小 表裡有水 天地各乘氣而立 載水而行"(하늘은 크고 땅은 작으며, 거죽과 속에 물이 있다. 하늘과 땅이 각기 氣를 타고 立해 있으면서, 물을 싣고 行한다)라고 천지는 氣立하여 載水하여 움직인다.
즉 帝에 실려 운반되어온(載) 내용을 중시하는 말입니다.
운기학은 송나라때 부활하여 상당히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창궐하는 유행병(흑사병 등)에 대처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적천수 곳곳에 등장하는 운기학 용어들과 후반에 질병학 등이 실려 있습니다.
帝를 상제라는 의미로 쓰였다면 굳이 載(실을재,운반할재)를 쓰는 것보다는 말씀(辭) 같은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교적 의미라면 당연히 뒷부분도 위 상제적 표현을 서술하는 내용이 등장해야 하는데 적천수가 이런 흐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帝에 실려(載)있는 내용 즉 황제내경 운기학에 실려 있는 내용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그 근원을 밝히는 동시에 적천수에 펼쳐질 向을 설정했다고 생각합니다.
2. 神功에 대하여...
神功은 神明의 구체적 표현으로, 술수학은 神이 밝혀 주는 神明학입니다. 그래서 어떤 술수학이든지 그 첫 설정은 神을 설정하고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리적 표현으로 소우주를 밝히는데는 당연힌 神을 설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종합적인 구조로 살펴보면...
‘3원 만물을 알고자 한다면’하고 시작한 화두는 그 답을 帝載與神功와 친해져야 한다고 정의함으로 적천수의 전체의 向을 설정한 것입니다. 즉 황제에 실려(載)있는 내용과 神이 밝히는 功과 친해져야 만물을 알 수 있다고 정의함으로서 적천수를 풀어나갈 向을 설정한 첫 화두입니다.
좋은 의문에 감사드립니다.
2004.2.11.
안초~
제목: re: re: 帝載與神功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2. 19:41:44
답변 감사드립니다.
적천수를 경도가 쓴 것으로들 이해하는데 저는 그냥 주관적 판단에 경도 자신이 쓴 것은 맞는데 독창적인 작품이라기 보다 그 당시에 퍼져있던 명리적인 사유들을 적천수란 이름아래 편집한 것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문헌적 근거에 입각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요. 어째든 경도의 저작물(편집)이 적천수인데 유백온은 적천수 원문에다가 주를 달았고 그러면서 책 제목은 그냥 그대로 적천수가 되다보니 유백온이 적천수의 저작인 것같이 이해되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저는 문헌학적으로 뭐가 정확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좌우간 저는 적천수란 책에 실린 글이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잘 모르나 인간 운명의 이치를 간결하게 적어가면서 순서를 가장 크고 근원적인 만물의 으뜸에서 출발하면서 기술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몇개의 주석을 보았는데 유백온의 것이고 그 다음으로 임철초가 천미라 이름붙이고 또 한편으로 서낙오가 보주라 하고 징의라고 하는 것도 있고 해서 그렇게 책들을 대략 보았는데(구체적 내용들은 잘 모르고 자세히 보지도 않았음. 그냥 건성으로 띄엄띄엄 보다가 말았음), 적천수 첫구절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서로 생각이 다르고 하길래 뭐 이런게 다 있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고전에 대한 해석이야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문학적인 수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이치를 규명하는 진술이라면 해석상의 차이가 용납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기에 첫단추부터 이렇게 다르게 시작해서는 명리학이 실증학문이 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연장에서 저는 천지인을 얘기하고 만물의 으뜸을 처음에 언급하는 이 적천수 글이 곧바로 신을 언급함은 당연하고 신보다 더 앞서서 중요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여 제를 상제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상제가 우주를 건사하고 자기 품에 담고 지탱하며 끌고간다는 의미의 글자가 바로 載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신은 당연히 우주(천지인 만물)을 운용하는데 사역하는 존재로서 그 공력을 논할수 있을 것이고요. 지금 생각하기에 이런 것들이 종교적인 것같아도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인식체계상 상제를 말하고 신들을 말하고 그러면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냥 제 생각일 뿐이죠.
그리고 帝載가 아니라 帝辭가 어울렸을 것이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발상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라는 식이니 말입니다. 중국(당-명-송)에서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사유를 하지 않았을 것같아 보입니다. 그 당시는 종교적인 것이나 운명적인 것이나 세계관의 근원은 다 상제니 신이니 이런데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적천수가 요즘 우리가 말하는 종교적인 책이 라고 하더라도
帝辭 라는 표현은 안 썼을 것같아 보입니다. 帝載가 아주 적절한 표현 같아 보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진술이든 운명적 진술이든 말입니다.
적천수란 책이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책이라면 상당히 포괄적일 것이므로 병과 관련된 의학적 측면도 암시하고 다루겠지만 이것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을 것같아 보입니다. 적천수가 황제내경을 암시하는 글자로부터 서두를 장식한다고 받아들이기가 잘 안되서 그냥 몇자 두서없이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저는 적천수란 책이 인간의 운명은 근원이 우주(천지인 만물)의 이치에 있고 이는 상제와 신명의 세계에서 연유한다는 고도로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수준의 기술에서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연후에 천도 지도 인도 즉, 道를 언급해 가는 것도 순서상 말이 될 것같고요.
제 생각이 유백온과 임철초의 주석에서의 생각과는 또 다르고 그냥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산 드림.
제목: 황제(내경)와 요제(서경)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3. 01:13:30
육산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임철저, 서낙오 등의 주석은 읽어 본지도 오래되었고 또 저 역시 건성으로 읽어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모르며 또 관심도 없습니다. 사실 帝載與神功는 이미 오래 전에 많은 논쟁을 거쳤어야 할 문구입니다. 육산님의 관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토를 달아 보겠습니다.
먼저 帝辭를 기독교 발상이라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착각하신 듯합니다. 辭는 엄연히 주역 계사전(辭)을 염두하고 쓴 글이었고, 실제로 고전에서 말씀을 높여서 부르는 실제 존재하는 용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載는 그렇다고 치고,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帝가 절대자를 의미하는 帝였다면 무엇인가 모시어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굳이 親(가까이할 친)이라는 용어를 볼 때는 위 존중의 의미를 반영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좀 사실적인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고전을 읽으면서 帝라는 호칭은 두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가 황제내경의 황제이고, 또 하나가 서경의 요제(요순)입니다. 아마도 송나라 시절 역시 帝라고 칭할 수 있는 분은 위 두 분밖에 없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죄송합니다만 상제라는 말은 근래에 들어와 만들어진 용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참고로 한의학과 운명학을 구분하시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구분이 없었습니다. 한의학 공부하는 사람이 운명학을 공부했고, 또 안 할 사람은 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만은 한의학과 운명학이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굳이 한의학과 운명학을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황제내경 운기학에 들어가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대교육을 배운 사람은 알든 모르든 뉴으톤 아인슈타인 학문을 공부했듯이 당시에는 누구든지 이런 기초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라면...
2004.2.12.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황제(내경)와 요제(서경)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3. 19:05:20
辭를 계사전을 염두에 두고 쓰신 단어였다니! 굉장하십니다.
저는 그냥 辭를 말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帝辭라면 하나님 말씀 이런 것일테니 하고 생각하다보니 이런 표현은 기독교적 표현 아닌가 그리 생각한거죠. 제 학식이 짧아서 한자 단어 해석에 얇음이 있었나 봅니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상제님 말씀과 신들의 功을 먼저 알아야 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황제내경과 신명들의 功과 먼저 친해야 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황제내경과 신명들의 功을 먼저 알아야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상제가 우주를 주재하고 신명들이 우주운행에 사역하여 기여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버린 것같지만, 저는 이중에서 제일 아래 것이 어쩐지 좋아보였습니다.
다른 한문고전(문학이나 역사서 등등)들은 제가 읽은게 거의 없고 또 기억도 못하기에 상제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디에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어슴프레 기억에 서유기란 책에 상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같습니다. 서유기는 당나라 때 얘기를 하는 것같은데 언제 쓰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얼추 당-명-송 시대는 아닐런지? 혹시 청나라, 아니면 근대의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帝라는 표현은 중극역사에서 삼황오제 라는 표현이 있고 제후니 천자니 또 제후국이니 그런 말이 있는 것같은데 그게 예전부터 나오는 단어인지 근대에 만들어진 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유대땅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예수 사후 몇 백년도 안된 물건)에 보면 뚜렷하게 帝라는 글자가 누가 썼는지 낙서처럼 옆 귀퉁이에 적혀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帝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에 쓰였던가 봅니다. 중국에서 쓰이던 글자가 유대땅에 까지 전파되었고 그 시대가 지금부터 1500년-은 더 되었을 시기이니 말입니다.
親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한다로 해석하면 황제내경이란 책과 가까워지라는 것은 말이 되는데 神功을 해석하는데는 영 아귀가 안맞아 보입니다. 신명의 공력과 가까워져야 한다? 여기서 친은 그냥 이해하라 또는 알아라 정도로 해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고전에서 단어를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식이 짧기때문에 확신있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帝가 만약 상제를 의미한다면 뭔가 떠받드는 언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은 좀 수긍이 잘 안됩니다. 그냥 親이라는 말을 해도 되는게 아닐까요? 그냥 이해해라.. 알아라 정도의 의미가 아닐런지요?
만일 帝가 황제내경을 의미한다면 그 다음에 오는 神攻도 뭔가 현실의 실체적인 물건이거나 최소한 내경이란 책과 대구가 될만한 그 무엇이이야 중국사람들 글쓰기 어법에 부응하는 것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명 얘기가 다음에 나와버리니 영 이상합니다.
저는 의학과 운명학을 다른 범주의 것으로 본다는 말을 한게 아니라 운명학의 범주속에 의학도 포함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주를 놓고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적천수라는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질병과 치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말이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에서의 길흉화복의 이치를 음양론에 입각해서 기술하는데 그 가운데 의학이니 질병이니 하는 것도 다룬다는 것입니다. 안 그랬다면 그냥 의학서의 일종으로 시종 질병의 발생원리를 얘기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것을 기술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그런 책은 아니 것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그러니 책의 向을 정하는데 처음부터 거대 담론으로서 우주-천지인 만물- 인간의 운명의 본질과 이치를 말하는 차원의 단어 선정에 황제내경 얘기하고 그다음에 신명 얘기한다고 이해하려니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여쭤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쓰여진 글들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홀로 굉장한 일을 하고 계신 것같아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
육산 드림.
제목: 학문의 연원(운기학)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4. 00:36:09
육산님!
지지닷컴의 학문적 수준을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건전한 논쟁을 좋아합니다. 건전한 논쟁이라 함은 이유 있는 근거를 동반한 논리적 주장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논리가 안 되니까 감정에 사로잡혀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육두문자로 인신공격을 하는 자 들을 아주 혐오합니다. 물론 이런 부류의 비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사실 적천수 처음부터 황제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좀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해자평에도 처음에 帝 및 黃帝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배경을 살펴볼 때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참고로 삼명통회에서는 연해자평을 경전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위 황제가 등장하는 이유는 이 학문의 연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학문의 족보를 밝히고 있는 것이니 당연히 처음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0갑자는 황제의 명에 의해 대요씨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자평학은 60갑자의 학문인만큼 당연히 황제학(운기학)이 근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6충, 6합, 3회합 등은 자평학이 아니라 운기학입니다.
따라서 황제내경에 실려(載) 있는 진리와 親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다음은 神功으로, 神明과 神功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神明은 신이 밝히는 것으로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神功은 신이 만든 것으로 형이하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親神功은 神이 만든 것 즉 형이하학적인 것과 親해져야 한다는 것이니까 분명 논리가 성립될 것입니다.
육산님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한문의 댓구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한문에는 문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만큼 기본 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구법(균형)만큼은 정확히 지킵니다.
그렇다면 親帝載與神功의 댓구를 살펴보겠습니다.
帝를 황제로 보았을 때 황제내경에 실려 있는 진리와 신이 만들어낸 공은 형이하학적인 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帝를 상제로 보았을 때 상제가 하신 말씀과 신이 만들어낸 공은 분명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댓구로 불균형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이야 독자가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즉 親帝載與神功의 문장은 이 학문의 연원을 밝혀 주는 문장입니다. 실제로 만세력은 물론이요, 천간, 지지, 6합, 3회, 천간합 등등 아주 기본적인 개념과 용어들은 모두 위 황제의 운기학에서 출발하였으니 운기학 용어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이것을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문의 중심이 없으니 제 멋대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학문의 연원을 밝혀 그 중심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이 학문은 원리가 밝혀지고 중지를 모을 수 있게 되어 발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므로 긴 시간 할애해서 건전한 논쟁에 응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해야 할 논쟁임에 틀림없는데...
육산님 덕분에 훌륭한 논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2.14.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학문의 연원(운기학)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4. 02:44:55
그동안 잘 몰랐거나 최소한 생각을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 것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감사도 드리고요. 합충원리가 황제내경에 근원한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지적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이니까요.
자평학의 연원이 운기학이고 운기학은 황제헌원학이라고 보시고 황제학은 내경이란 책으로 대표되느니 만큼 의학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같습니다.
이것을 부정할래야 부정하기 힘들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알고 명리학을 공부한다면 아주 좋은 명리학 공부의 시작일 것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는 명리 서적들이 그런 것을 적어 놓지를 않아서 자평학의 연원까지 탐구하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같습니다.
다만, 자평학의 연원과 관련하여 약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어 제 생각의 일단을 적어보겠습니다. 적천수에서는 9장 간지 총론에 陰陽順逆之說 洛書流行之用 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중국 하나라 우왕의 낙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낙서를 말하는 것은 이미 하도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이것은 태호 복희씨 시대로 까지 올라갈 것같습니다. 황제 헌원이 오제 중의 하나이지만 태호 복희는 삼황 중의 하나로 시대적으로 황제헌원에 비해 엄청나게 이전이 됩니다. 굳이 자평학의 연원을 밝히려 했다면 복희씨 시대까지 안가란 법이 없었을 것인데 왜 삼황오제 중에서 오제 중의 하나인 황제헌원에서 멈췄을지 의아합니다.
자평학이란 것이 연원적으로 어디까지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당나라 시대 이후의 것이라고 보면(최소한 삼명학 이후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주를 주로 놓고 사주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을 자평학이라 한다고 치고) 그 이전 시대의 지적 산물들과 사유의 조각들에서 영향받고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된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것인바. 운기학적 생각들 뿐만 아니라 음양론적 생각, 유교적 생각, 도교적 생각, 불교적 생각들이 다 섞여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실제 예를 들어 보면 7장 [천간]에서 丁火에 대한 기술을 하면서 乙의 관계를 孝라는 말로 하고 있고 壬과의 관계는 忠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유교적 사유체계를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비단 자평학이 운기학적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명리를 알려면 운기학도 알아야겠지만 유교적 도덕론도 알아야 된다는 증거같습니다. 물론 도교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천수의 저자를 생각할 때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책만큼은 최소한 경도가 그 시대의 사유들의 편린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적천수는 天道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작합니다. 첫장이 하늘이치를 말하는 부분입니다. 고도로 형이상학적 내용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帝載와 神功을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帝도 하늘나라 실체이고 神도 하늘나라 실체로 보아야 될 것같습니다. 하늘(天)의 이치(道)는 (上)帝와 神에서 출발하고 帝가 載하고 神이 功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적천수를 시작하는 것이 뭔가 그럴듯한 전개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왜 天道라고 하고 시작하는지와도 일맥상통할 것같고요.
제가 神을 굳이 神明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귀신(ghost)의 어두운 이미지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神明은 하늘(天)에 있는 존재(실체)이고 그냥 神을 말하는데 밝은 빛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우주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것의 이면에서 실체로서 존재하며 사역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神들을 조종하고 우주를 이치(음양, 오행, 60갑자등의 원리)로써 주재 운용하는데 쓰는 존재가 상제인데 그냥 帝라고 표현한 것(표현의 대구적 묘미를 살리기 위해)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력은 일부러 애를 써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적천수 첫구절을 읽을 때 곧바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생과 다르기에 스스로도 조금은 이상했지만 말입니다.
논쟁은 아니고 그냥 토론해 보았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리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데는 자꾸 대화를 해봐야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인지 얘기를 여기까지 끌고 온것 같습니다.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육산 드림.
제목: 하나의 원리(向)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5. 00:27:09
육산님!
계속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합충은 천문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별자리에는 합충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제시대에 기백에 의해서 5운이 천문의 28수 원리에서 비롯되었듯이, 아마도 합충 역시 위 천문의 합충원리에서 비롯되어 갑자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 합충과 3회합은 황제의 운기학인 만큼, 한의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경락의 원리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한의학과 자평학은 각자 원리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황제내경의 운기학이 현존하는 한 하나의 원리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한의학회 강의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많은 한의사 분들 역시 많은 관심을 표방하고 있습니다.(실제 지지닷컴은 많은 한의사 분들이 보고 있고, 또 회원가입이 되어 있음) 그런데 명리학 일부에서는 위 합충과 3회합이 허황되니 부정해야 한다는 학문의 퇴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쩝!
그러나 육산님이 말씀하셨듯이 자평학은 위 황제의 운기학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복희(하도), 우왕(낙서), 서경(곡직,가색), 불교(체용) 등등 황제학 이외에 많은 神이 내려준 업적(功) 들에 의해 이루어진 학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帝載이외의 神功입니다. 따라서 帝載가 한의학과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는 길을 열어준 다면, 神功은 기타 동양학과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는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向이며, 동양학의 우월성입니다.
그래서 경도는 적천수 첫 화두에서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황제학에 실려 있는(載) 진리와 그 밖에 神이 내려준 업적(功)을 가까이(親)해야 한다고 적천수의 向을 제시한 것입니다.
帝載
경도는 적천수에서,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라고 4주의 근원을 첫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육산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장 역시 허황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2.16.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하나의 원리(向)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6. 00:51:24
좋은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거 큰 일 났습니다. 자평명리 하나 공부하려는데 그것도 직업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적 취미삼아 관련 책들 좀 보고 그러려는데 엄청나게 범위가 넓어져야만 하겠기에 말입니다.
神功과 친해져야 三元의 宗을 알수 있다라는 말인데 신공(신의 업적물)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죠.
경도라는 사람은 참 이해하기 힙든 사람같습니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니 말입니다. 언제 그 많은 신공들과 친해져야 할지 난감합니다.
동양학(동양적 사유법, 동양적 인식론의 기저)은 만가지 중에서 하나를 잡는 것(귀납적 접근, 경험론, 통계학, 서양식 과학적 인식론)이 아니라 하나를 잡아 만가지로 적용하는 것(연역적 접근, 선험론, 직관론, 깨우침)인데, 그래서 직관 내지는 心覺으로 이치를 터득하는 것인데 삼원의 근원을 識하는 것을 하나를 잡아 만가지를 적용한다는 생각을 밑에 깔고 나오는 글을 쓰지 않고 수많은 것들과 친해지면 만물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는 아주 서양식의 경험론적인 접근법을 깔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명리를 깨우치려면 명리학 고전을 정독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여러 부류의 동양학 서적들을 폭넓게 보고 익혀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니 갈 길이 창창하게 느껴져 한숨이 나옵니다.
육산 드림.
제목: 연역적 사고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7. 00:42:38
안녕하십니까.
육산님의 글을 보면, 다 알고 계시면서 돌려 말하시는 기분이 듭니다.
“동양학(동양적 사유법, 동양적 인식론의 기저)은 만가지 중에서 하나를 잡는 것(귀납적 접근, 경험론, 통계학, 서양식 과학적 인식론)이 아니라 하나를 잡아 만가지로 적용하는 것(연역적 접근, 선험론, 직관론, 깨우침)인데, 그래서 직관 내지는 心覺으로 이치를 터득하는 것”
네, 아주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위 하나를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바로 神이 알려주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神功아닙니까. 그러니까 경도는 연역적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귀납적으로 얘기했다면 神功보다는 人功이라고 썼을 것입니다.
사실 육산님이 말씀하신대로 적용은 그렇다고 치고, 연역적인 하나의 진리를 추출해 내는 것만도 평생이 걸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영어공부는 그까짓 20여년 세월동안 가진 노력을 다해도 외국사람 앞에서 말조차 못 꺼내는 사람이 부지기수 인데, 사람의 운명에 대한 공부가 어찌 수개월에 끝낼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취미로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취미는 역시 취미일 뿐입니다. 취미삼아 공부해서 자신의 운명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 낼 수만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취미삼아 공부하신 실력이 프로보다 훨씬 나아보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2.17.
편안한 돌! 안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