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맹파 명리학의 유래와 특성
단건업(段建業)이라는 사람이 2000년부터 중국에 맹파 명리학을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하기 시작했다. 맹파 명리학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 학설의 내용을 널리 전파하고 있는 그는 맹파 명리학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던 자신의 저서 �맹파명리(盲派命理)�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
“맹사(盲師) 일파의 논명 방법은 줄곧 구전으로만 전수되어 왔고 맹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운명 해석의 절학이었다. 판단이 놀랍도록 정확하고 출신입화의 경지에 도달해 있어서 백번 말해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다고 민간에 칭송이 자자했었다. 천여 년 동안 명학을 연구하는 저서가 매우 많았지만 단 한권도 심오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내가 인연이 있어서 정축년(1987)에 맹사(盲師) 학금양(郝金陽) 선생님과 친교를 맺게 되었는데 그 분이 친히 운명을 판단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고 심히 놀라 사부님으로 모시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맹파의 절학은 외부로 전할 수 없다는 사훈(師訓) 때문에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배운 바가 많지는 않았다. 맹인 산명(算命)은 왕쇠를 보지 않고 용신을 논하지 않고 격국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현행의 명리학 이론과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이 없이 확실하게 맞추는 것이 가능하고 아주 오묘한 바가 있었다. 나는 2000년 이후에 비로소 맹파 명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여 �명리진보(命理眞寶)�, �명리괴보(命理瑰寶)�, �맹파단명질례집(盲派斷命軼例集)�을 저술하게 되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못을 이루듯이, 그 책들 속에서 알 수 있겠지만 맹파 명리의 연구는 아주 느리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다. 흡사 술을 빚을 때와 같다고나 할까, 사부 학선생님이 나에게 남겨주신 것은 진귀한 누룩이었고 좋은 술이 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의 발효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선생님의 논명(論命)하시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멀었고, 다만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장위(張衛)는 2006년에 출간된 �맹파명리(盲派命理)�의 추천사2)에서 다음과 같이 맹파명리의 보급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 사부 단건업은 돈후한 성품으로 배움에 깊이 침잠하는 분인데 기묘한 인연이 있어 맹파의 고인(高人) 학금양 선생의 비결을 전수받고 맹파의 심오한 경지를 들여다보다가 수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맹파의 옳은 이치를 깨닫게 되셨는데, 스승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감히 사장시키지 못하고 근년에 이르러 스승님의 절학과 자기의 심득을 정리해서 책을 펴내 대중에게 공개하시게 되었으니, 오로지 인연이 있는 자는 이것을 익혀 도를 전하는데 사용하길 바란다. 신작 �맹파명리�는 맹사(盲師)의 판단법을 전체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총결한 것이다. 이리하여 맹사의 학문이 다시 발전하게 되었고 맹파 명리를 체계화, 이론화하여 일반인이 읽고 맹사의 법을 체득하고 맹파에 입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건업 사부님의 이런 거사는 현시대의 학도들에게 크나큰 행운이며 그 공로는 이보다 더 클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맹파 명리학은 2000년 이후에 단건업이 세간에 공개한 명리 학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위는 그 추천사에서 맹파 명리학의 특성을 이법, 상법, 기법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3)
“맹파 명리를 총괄해 보자면 그 법은 이법(理法), 상법(象法), 기법(技法)의 세 가지인데, 본서에는 앞의 두 가지가 기재되어 있다. 이법은 논명의 근본이며, 이가 통한 즉 국(局)이 밝게 되고, 국이 밝은 즉 상(象)이 나온다. 맹사(盲師)의 가슴속에는 그 이법이 천지 자연의 이치로 품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별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단건업 사부의 법은 맹사의 것으로 역리에 근거를 두고 음양오행의 설에 따라 그것을 정리 발전시키고 맹파의 이법으로 삼아 맹파의 학문을 요약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이법은 음양을 벗어나지 않으며, 술수는 음양이 근본이 아닌 것이 없고 만약 음양과 무관하다면 거짓 술수에 불과한 것이니 명을 배우는 자는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맹파의 이법은 빈주(賓主), 체용(體用), 간지배치(干支配置)에 있으며 음양과 결합이 되지 않음이 없다. 빈주를 가지고 내외(內外)를 구별하고, 체용을 살펴서 득실(得失)을 가리며, 간지를 분석하여 형상(形象)을 구별하고, 원국과 대운과 유년을 보고 동정(動靜)과 길흉(吉凶)을 알게 된다. 배우는 자가 음양으로부터 착수한다면 노력을 절반만 들이고 두 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오행의 학설 역시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맹파의 공용(功用)의 이치는 여기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제국(制局), 합국(合局), 묘국(墓局), 생국(生局), 화국(化局), 대국(對局), 전국(戰局) 등등, 형태는 여러 가지이나 이치는 하나인 것이고, 생극승모(生剋乘侮)와 충합형해(冲合刑害)와 같은 팔자의 공(功)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이치를 알면 맹파에 입문할 수 있고 명(命)의 의향과 명국의 고저와 부귀빈천의 층차와 대운과 유년의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상법은 맹파의 정수임과 동시에 술수의 정수이다. 술수는 역에 근원을 둔 것인데, 역이란 상(象)의 학이다. 옛날 성인들이 자연을 관찰하여 괘를 만들면서 역학이 전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맹파의 상(象)은 명리 고적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역상(易象)과 맞아 떨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명을 해석함에 있어서 신처럼 영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맹사(盲師) 하중기(夏仲奇) 선생이 어떤 여자가 6000리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80세 노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맞춘 것은 모두 상을 이용한 것이다. 혹자는 그것은 수(數)인데 어째서 상이라고 헛소리를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을 보는 것이 수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상에서 수가 스스로 나오는 것이니, 천문과 수학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상과 수는 하나인 것이다. 책에 기재된 간지의 상, 궁위의 상, 신살의 상은 상의 운용이고, 대상(帶象), 공상(共象), 합상(合象), 화상(化象) 등의 종류는 모두 상을 취하는 법문이다. 그러나 상법의 운용은 깨달음에 달려 있으니, 그 법을 알아도 변화에 통하지 못하면 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딸의 팔자를 단 사부에게 보여주었을 때, 단 사부는 그 여자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사망한 것을 맞추었는데, 이것이 상의 운용인 것이다. 명을 배우는 자가 만약 완숙하게 상법을 운용할 수 있다면 사주의 해석에 있어서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세밀하게 맞추게 될 것이다. 기법은 맹사(盲師)의 남에게 전하지 않는 비법으로, 입으로만 전하는 것인데 평범한 이치로는 추측할 수가 없다. 소위 공리(公理)는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본서에서는 서술하지 않았고, 나 역시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같은 책의 또 다른 추천사를 쓴 단건업의 제자 주일신(周日新)은 맹파 명리학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명리학 자료를 부단히 수집하고 이홍성, 이함진, 장성달, 유립걸, 곽요종, 유등운 등의 책 등... 현재 유행하는 명리이론은 사주를 입수하면 먼저 일주의 왕쇠를 보고 그 다음에 희기를 연구하고 다시 용신을 찾곤 한다. 일주의 왕쇠가 사람들을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인데 용신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2000년에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복문명학(卜文命學)�을 읽게 되었는데 읽는 순간 신기한 맹사(盲師) 학금양이 팔자를 풀이했던 신기한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어렸을 때 (맹인에게) 사주를 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논명에 있어서 일주의 왕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용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이론과 다르다는 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원래 왕쇠를 논하지 않고 용신을 찾지 않고도 구체적으로 맞추어 사람을 놀라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장위와 주일신의 추천사를 통해서 맹파 명리학의 유래와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맹파 명리학이란 왕쇠와 용신을 따지지 않고, 이법, 상법, 기법에 의해서 팔자를 해석하는 이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