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생은 41세 정묘년에 부군과 사별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
대운궁은 양둔이므로 순행하여 兌궁 ,
于先 , 首尾腹背로 수리가 결박돼 있는 궁을 봅니다 , 坎궁이 兌궁과 首尾腹背 입니다 .
이팔 수리의 首尾腹背가 포괄(包括)의 동기로 건궁을 모티베이션 합니다 .
乾궁은 官鬼궁으로서 , 中궁과 천충 지충으로 걸려있습니다 (乾궁은 煙奇법으로 관록궁 , 남편궁이기도 함)
정묘년 소운궁은 역시 兌궁 , 다시 건궁을 包括하여 인동시킵니다 .
1947년 정해년은 삼원구운으로 중원 5운에 해당하는 바 , 구자화성은 殺氣로서 대흉수 입니다 .
兌궁은 財궁으로서 , 공망을 범했고 , 대충궁인 震궁과 천충 지충 하여 핍갈 당하니 , 천반 二火 官이 멸식 당하고 , 다대한 재물도 모손함이라 할 것 입니다 .
天符성(태을구성)이 재박하였으니 , 문서 문제가 불거졌을 것 ..
지지가 모두 구궁도의 밑바닥 어두운 공간에 몰려 있으므로 , 그 성정이 명랑함과 화창함이 부족합니다 ,
본괘의 원당효는 구4 인데 , 그 爻辭에 규孤 遇元夫 交孚 려 无咎 라 했으되 , 먼저 외롭게 되고 , 후에 다시 좋은 남자를 만나(遇元夫) 게 됨을 말해주고 있으니 ,
실상 , 부군과 애닯픈 사별 후 십년을 외롭게 사시다가 재혼하셨으니 , 爻辭의 증험이 여실한 바 되었습니다 .
출처 : 관상자미두수지평학회
글쓴이 : 石벼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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