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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락오선생은 자신의 명조를 제대로 풀이했다.

일통 2009. 11. 7. 11:41

東海 徐樂吾 命造 短想  - 우보 -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80 70 60 50 40 30 20 10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
東海   徐 樂吾 : 乾  1886-4-6  (4-5  淸明)     
倒沖 : 寅   虛三合 : 子


이 사주의 용신은?  무엇하는 사람 사주일까요? 서락오 자신이 자신의 사주를 평하기를 용신이 辰中 乙木이라고 하였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육산이 2001년도 7월에 난강학회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윗글로 미루어 짐작컨대, 육산이 이 글을 쓸 당시에 辰中 乙木 용신이라는 서락오의 말이 아니고, 방귀 정도에 해당하는 한심한 논리를 간파하고 있었다 보이는데.. 오늘 이 글을 처음 보고, 육산에 대해 웬지 모를 호감을 느꼈습니다. 정말로 진리를 찾아 헤맨 그 오랜 세월들. 나처럼 찾아 헤맨 또 다른 고독한 친구를 발견했다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고전의 설명에서 한계를 느끼고, 정답을 찾기 위해 비슷하게 생긴 유형의 사주들을 이 책, 저 책들을 가리지 않고 다 찾아서 정리를 해 보고, 궁리에 또 궁리. 어떤 명조는 그 한 개 사주를 정확하게 해부하기 위해 심지어 수년간 머리속에서 화두를 버리지 못하고 수백번 이상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나온 이론이 바로 4가지 체계 음양론, 회운론, 병약론, 생극론 입니다.


비록 지금 제 운이 비색하여 알아 주는 사람이 없고,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적을지라도, 언젠가는 천년 자평을 송두리째 바꾸는 자평학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믿어 봅니다. 아래는 유명인사 사주방에 올린 서락오 명조에 대한 제 글 입니다.


[서 락오의 약력]


서락오는 광저 12년 3월 3일 신시에 즉 서기 1886년 4월 6일 출생했다. 서락오가 직접 쓴 고금명인명감과 자평일득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에게는 형제가 3명이 있으며 형제 중에서 가장 어렸다. 당시에 조상이 나라에 세운 공로로 인해 특권을 가지고 있어서 집안은 풍족하였다. 본인은 두 명의 처가 있었고 두 아들과 두 딸을 길렀다.


그는 근대에 들어와서 명학가로 이름이 났으며 평저가 매우 풍부했다. 27세 이후에 명리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일생동안 명리가로써 이름은 났지만 영리를 도모하지는 않았다. 서락오는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80 70 60 50 40 30 20 10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
* 14세인 己亥年에 부모를 잃어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 15세 이후에는 공부해서 시험을 봐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 20세 이후에는 정계에 투신했지만 특별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 29세에 일본에 관광을 갔다 와서 귀국 후에 절군부에서 직책을 맡았다.
* 47, 8세에 상해에서 발생한 1. 28 사변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 50세에 적천수 보주, 51세는 자평진전평주,
* 52세는 적천수보주, 궁통보감, 53세는 자평수언,
* 56세는 조화원약평주를 썻으며 명리이론에 관한 서적으로 명리일득 자평일득 고금명인명감 등의 책을 틈틈이 저술했다.
* 63세에 심장병으로 인해서 사망했다.


[자평진전평주 215 페이지 : 서락오의 자해] - 辰의 壬水가 투출하니 辰의 지장간 乙木이 화살하는 용신이 된다. 청명절 후 1일이 지났으므로 乙木이 사령하므로 가히 용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辰中의 乙木이 용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용, 병, 약이 어떻게 되는 사주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서락오조차 자신의 명도 못 보는 한심한 수준이었음을 절감한다. 辰中의 乙木이 어떻게 丙火를 생할 수가 있나. 오행의 기초도 모르는 소리다. 辰月의 丙火 일간으로 음기가 절정에 달해 있는 달이다.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70 60 50 40 30 20 10
己 戊 丁 丙 乙 甲 癸
亥 戌 酉 申 未 午 巳
-----------------------
* 火用, 木病 金藥, 水病 土藥이다.


* 초년 癸巳 甲午 乙未는 지지 巳午未의 운덕에 살아간 것이다. 천간 癸 甲 乙은 모두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단, 癸巳 甲午 乙未운의 장점은 원국과의 부딪힘이 없으니 흉운 중에서는 順運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 丙申대운은 월간의 壬水 病에 회극당하니 도전과 응전으로 기복을 겪으면서 발전하는 운이다.


* 아마도 丙申대운에 壬水에 회극당하면서 고통을 느꼈으니 火用임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명에 기반을 두고 공부를 하고 학리를 전개하기 마련이니.
 

* 대운 丁酉부터 길운이다. 丁火가 病이 되는 壬水를 합으로 제거하니 이 시기부터 이름을 내고 발복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대운 戊戌에 가면 운의 절정에 이른다. 病인 壬水를 戊土로 제거하니 壬水 편관의 길이 나타났을 것이니 당연히 명성이 나게 되는 것이다.

 

 
[松栢 생각]

 


명리학은 이미 완성된 학문이다. 후학이 멋진 이론을 창안했다고 자부하는 것이 고전에 이미 나와있기 십상이다. 하여 고전을 모두 읽고 터득하기 전에는 새로운 이론을 창안했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다.


서락오 명조에 대해서 많은 분이들 서락오 자신이 해석한 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허나 松栢은 서락오선생의 자해는 올바르다고 본다. 그것을 과거에 대입하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화살표 부분에 松栢의 의견을 적는다.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70 60 50 40 30 20 10
己 戊 丁 丙 乙 甲 癸
亥 戌 酉 申 未 午 巳
-----------------------
=> 土月格에 用木 사주. 水補陽光해주는 壬水를 喜하고 土金을 忌한다. 다만, 金은 金生水할 때는 희신이다.


* 서락오는 형제가 3명이 있으며 형제 중에서 가장 어렸다. 당시에 조상이 나라에 세운 공로로 인해 특권을 가지고 있어서 집안은 풍족하였다. 본인은 두 명의 처가 있었고 두 아들과 두 딸을 길렀다.


=> 사주만 가지고 출신을 알기는 어렵다. 설령 맞춘다 해도 억지성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동일 사주도 출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지로 꿰어맞춰 보면, 壬辰대운 이전에 북동방 水木運을 지나왔기에 집안이 여유로웠다고 본다.


* 14세인 己亥年에 부모를 잃어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 13세 癸巳대운 戊戌年은 土기신이 강한 흉년이다.

 
* 15세 이후에는 공부해서 시험을 봐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 14세 癸巳대운 己亥年부터 발전하는 년운으로 흘러간다. 단, 대운은 남방 火土운으로 기신운이다.


* 20세 이후에는 정계에 투신했지만 특별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 甲午대운은 용신 甲木이 死地에 들어 무력하다. 아군 甲木이 木生火 火生土하여 적군으로 변한 형국이다.


* 29세에 일본에 관광을 갔다 와서 귀국 후에 절군부에서 직책을 맡았다.


=> 29세 甲午대운 甲寅年은 木年으로 용신년이다. 이후


=> 乙未대운은 未中에 통근한 乙木이 힘쓰니 好運이고,
=> 丙申대운은 壬水 희신이 申中 壬水에 통근하는 장생지로 好運이다.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70 60 50 40 30 20 10
己 戊 丁 丙 乙 甲 癸
亥 戌 酉 申 未 午 巳
-----------------------
* 47, 8세에 상해에서 발생한 1. 28 사변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 47세 丙申대운 壬申年은 대길년이다.
=> 48세 丁酉年은 천간으로는 최길 희신 壬水가 丁壬合으로 합거되고, 지지로는 丙火일간의 死地인 酉金이 申酉戌 金方을 짜서 희신 申中 壬水와 辰中 癸水를 金方으로 변질시키고, 또 辰酉合으로 辰中 癸水를 합거시기는 흉년이다.


참고(1) 본명에서 申金은 壬水의 장생지로 申壬辰 준삼합을 짜는 희신이지만, 酉金은 金克木하는 기신이다.
참고(2) 년운은 동지부터 서서히 운이 들어온다. 하여 동지부터 입춘까지는 전년도의 기운과 금년도의 기운이 혼재된 시기로 본다. 이것은 松栢의 관법이다. 고대에 亥月歲首說과 子月歲首說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면 이해될 것이다.


* 50세에 적천수 보주, 51세는 자평진전평주,
* 52세는 적천수보주, 궁통보감, 53세는 자평수언,
* 56세는 조화원약평주를 썻으며 명리이론에 관한 서적으로 명리일득 자평일득 고금명인명감 등의 책을 틈틈이 저술했다.


=> 丁酉대운과 戊戌대운은 최악의 대운이다. 그나마 나은 것은 丁壬合 化木이 용신 역할을 해서 공부하고 책이라도 쓴 것이다.


* 63세에 심장병으로 인해서 사망했다.


=> 63세는 戊戌대운 戊子年이다. 水土가 相戰하는 해인데, 본명은 水補陽光 貴格으로 土運이 와서 晦陽회양하면 水火相濟가 지장받아서 용신 乙木이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참고로] 심장병은 대체로 土克水가 원인이다.(혈액인 水가 土克水로 막히는 것) 중풍은 水泛木浮일 때이다.(火氣 부족으로 木이 자라지 못하는 것)


[자평진전평주 215 페이지 : 서락오의 자해] - 辰의 壬水가 투출하니 辰의 지장간 乙木이 화살하는 용신이 된다. 청명절 후 1일이 지났으므로 乙木이 사령하므로 가히 용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용신은 건왕해야 한다는 학설이 대세이지만, 용신이 무력해도 왠만하면 원국에 필요한 글자가 용신이 된다. 용신이 힘있으면 그릇이 큰 것으로 보는 것이다. 본명은 水火相濟된 상황에서 득령한 乙木이 강하므로 그릇이 큰 편에 속한다.


* 과연 辰中의 乙木이 용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용, 병, 약이 어떻게 되는 사주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서락오조차 자신의 명도 못 보는 한심한 수준이었음을 절감한다. 辰中의 乙木이 어떻게 丙火를 생할 수가 있나. 오행의 기초도 모르는 소리다. 辰月의 丙火 일간으로 음기가 절정에 달해 있는 달이다.
 

丙 丙 壬 丙 : 乾命(63)
申 申 辰 戌  


70 60 50 40 30 20 10
己 戊 丁 丙 乙 甲 癸
亥 戌 酉 申 未 午 巳
-----------------------
* 火用, 木病 金藥, 水病 土藥이다.


* 초년 癸巳 甲午 乙未는 지지 巳午未의 운덕에 살아간 것이다. 천간 癸 甲 乙은 모두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단, 癸巳 甲午 乙未운의 장점은 원국과의 부딪힘이 없으니 흉운 중에서는 順運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 천간 지지로 희기가 엇갈리는 運은 어느 것이 맞는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 丙申대운은 월간의 壬水 病에 회극당하니 도전과 응전으로 기복을 겪으면서 발전하는 운이다.


* 아마도 丙申대운에 壬水에 회극당하면서 고통을 느꼈으니 火用임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명에 기반을 두고 공부를 하고 학리를 전개하기 마련이니.


=> 丙申대운은 본명에 길운이다. 용신 木이 투간했더라면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서락오선생이 丙申대운에 절군부 직책을 얼마나 오랫동안 맡았는지 모르나.
 

* 대운 丁酉부터 길운이다. 丁火가 病이 되는 壬水를 합으로 제거하니 이 시기부터 이름을 내고 발복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대운 戊戌에 가면 운의 절정에 이른다. 病인 壬水를 戊土로 제거하니 壬水 편관의 길이 나타났을 것이니 당연히 명성이 나게 되는 것이다.


=> 세상에 나아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책을 쓰는 일을 好運에 하는 일로 볼 수는 없다. 運이 나빠서 하릴없는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運이 좋으면 말단 직책이라도 세상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 일을 하면서 취미로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역술업이 본업인 사람이 책을 쓰는 것과도 다르다.

출처 : 조흔사주 원리학당
글쓴이 : 조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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